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기 지하철 계획 (문단 편집) === 구자춘 시장과 2호선 순환선 === 구자춘 시장은 강남 ~ 영등포 ~ 도심 '''3핵도시론'''에 입각, 이를 연결하는 당시로서는 세계 최장거리 순환선인 [[서울 지하철 2호선]]을 계획하고, 3호선은 [[불광역|불광동]] ~ [[서울역]] ~ [[사당역|사당]], 4호선은 [[미아역|미아동]] ~ [[동대문역|동대문]] ~ 보광동 ~ 영동을 잇는 형태, 즉 지금 3호선과 4호선을 반씩 섞어놓은 듯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이 계획에선 3호선과 4호선 환승역이 없었다. 3호선 강남구간이 4호선이었고, 4호선 강남구간이 3호선이었다. 즉, ) ( 형태의 노선이었다는 것.] 2호선은 이 당시의 계획 거의 그대로 착공되었고, 3호선과 4호선은 1977년경 계획이 수정되어 서울을 X자로 관통하는 현재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선형이 완성된다. [youtube(EfFQ8KQbxpM)] 그러나 당시 중앙정부든 서울시든 빈약한 재정으로 인해 원하는 만큼 지하철을 짓기는 어려웠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서울 지하철 4호선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으려고 했고, 여러 재벌들의 투자금을 끌어모아 1979년 3월에 (가칭)지하철건설주식회사를 출범시켰으며, 이 기업은 1980년 2월에 정식 사명을 서울지하철건설주식회사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기업의 주도 하에 자금을 모아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을 착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3호선과 4호선의 공사비는 착공 당시 예상되었던 수준의 2배 이상으로 치솟았고, 서울지하철건설주식회사에 출자한 기업들은 추가 출자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서울시는 [[공채|지하철공채]]를 발행하여 부족한 지하철 건설 사업비를 메꾸는 대신, 민간투자사업 방식을 포기하고 서울시가 전액 출자하는 [[지방공기업]] 방식으로 지하철을 건설하고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지하철건설주식회사는 해산되고, 이를 대신하는 형태로 1981년 9월 1일에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를 설립한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106240020920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6-24&officeId=00020&pageNo=7&printNo=18374&publishType=00020|출처]] 이에 따라 1호선과 2호선을 서울특별시 지하철본부가 건설한 것과는 달리 3호선과 4호선은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가 직접 건설하고 운영하였다.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는 그 후 [[서울메트로]]로 사명을 개정하고,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와 통합해 [[서울교통공사]]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